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음을 부인하면서 출애굽기의 등장하는 파라오(바로)의 예를 들곤 한다.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출애굽기 10장 27절

 

이 말씀 하나만 두고 보면 마치 하나님께서 바로를 괴롭히기 위해 그가 마음을 바꾸는 걸 막고 그가 계속 하나님을 거부하는 선택을 하도록 자유의지를 제한하신 것 처럼 해석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하나님의 의도에서 멀어지는데 하지만 너무 분명한 인과관계가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기에 조금만 생각해봐도 오해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이스라엘의 남자 영아들을 살해해온 이집트에 대해 심판하셨다. 

 

하나님께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주셨지만, 심판을 피할 자유를 주진 않으셨다.

출애굽기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집트는 이스라엘 민족을 역사적으로 노예로 부리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멸족시켜 흡수하기 위해 남자아이들을 골라 학살하고 있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의 지혜로 멸망을 피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학대한 죄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으로 내리셨음을 출애굽기의 맥락 속에서 읽을 수 있다.

 

자유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권리일 뿐 만 아니라 자유롭게 행동하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전체에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는 자유롭지 못함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이집트에 그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포기하고 놓아줄 마음이 이를 때까지 10가지 재앙을 통해 그들을 벌하셨다.

그리고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지만 때론 죄에 대한 심판을 피할 자유는 주어지진 않는다.

 

특히 구약 시대에는 인간이 죄를 지어도 그 죄를 해결할 방법인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므로 하나님은 죄의 범람을 막기 위해 죄에 대한 심판을 더욱 가혹하게 하셨다.

구약시대에서 죄는 마치 치료제가 없는 전염병처럼 다뤄졌다.

그래서 예수님의 은혜를 입어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얻을 수 있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엔 구약 시대의 심판들은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 이후의 은혜의 시대인 지금에도 하나님은 때론 회개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신다. 

 

이는 본 블로그에서 "구원의 취소와 자살의 문제"에서 언급한 바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 구원받은 뒤에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하여 그의 구원을 취소하여 화인 맞은 자로 분리하는 상황도 상황도 결국 출애굽기의 파라오와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이가 하나님을 믿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하여 화인 맞은 자가 되어 구원이 취소된고 다시 사함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면 그의 그의 죄로 인해 심판받아 자유의지에 반하여 그는 구원에서 제외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지만 죄에 대한 심판을 피할 자유는 없다.

 

그것이 영원한 심판이자 악마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지옥에 믿지 않은 혹은 배교한 자들이 가는 이유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죄에 대한 심판을 피할 자유를 주진 않으셨다.
이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성경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하지만 그 자유의지에 따라 악행을 저지르면 그에 대한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파라오의 경우도 그의 국가가 조직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어린 남자 아기들을 학살한 책임을 지기 위해 파라오가 그에 대한 심판을 피할 수 없도록 그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셨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죄인과 배교자는 지옥에 간다고 복음서와 신약 성경을 전체를 통해 말하고 있다.
만약 인간의 영혼이 선택할 수 있다면 지옥에 가는 선택을 할 영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심판, 즉 자유의지에 대한 행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심판은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일어난다.
그것이 성경을 전체를 통해 가르치고 현대 사회에서도 계승되고 있는 자유의 의미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자유로운 행동"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문제에 대해 파라오의 입장에서 몰입하면 안되는 것은 그렇다면 숫자가 기록되지 않았지만 수없이 살해되었을 남자 아기들의 목숨과 노예 노동에 시달리며 죽어갔을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출애굽기에 기록된 이집트의 악행들의 책임자인 파라오에 대한 자유의지 운운은 어처구니가 없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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